EO스튜디오: 우당탕탕 성장 서사

Stories of Bands
작성자
양형준
작성일
2023-08-26 13:53
조회

 

“자꾸 돈없다 포스팅하시는데, 누군가한테 펀딩 받을 것 같네요”

 

(2018년 3월 14일, 라인 인턴 다섯 분과의 그룹챗. 지금은 네임드가 되신 조코딩님도 계신다.)

 

라인 글로벌전략팀 재직 시절, 제가 인턴분들께 ‘EO’(당시 유튜브 채널도 아닌 ‘태용’ 페이스북 페이지)를 처음 공유하면서 나눈 이야기들인데요, 그 투자자가 제가 될 것이라고는 정말 꿈에도 알지 못했었습니다.

EO에서 처음봤던 영상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당시 라인에서 글로벌 빅테크 회사들과 경쟁하는 동시에 그들을 벤치마크하고 동경하던 제 입장에선, 혈혈단신으로 카메라 한대 들고 실리콘밸리에 날아가서 내로라하는 테크 구루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던 김태용 대표님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한 충격으로 남아있습니다. 

2018년을 돌이켜보면, 국내 스타트업씬이 지금처럼 발전하지도 않았었고, 유튜브의 매체 파워도 이 정도로 압도적인 수준이 아니었으며, EO 같은 포맷의 고퀄리티 테크 컨텐츠(이자 교보재)들은 매우 희소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단순한 충격을 넘어서서, EO는 제가 라인을 떠나 글로벌 빅테크든 MBA든 빨리 next step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바로 아래의 이시선(당시 모닝리커버리 대표)님의 영상을 통해서요. 이 영상은 정말 너무 재밌으면서도 큰 충격이었어서 앉은 자리에서 5번넘게 돌려봤고, 저 사람처럼 되는 시도라도 해보려면 빨리 다른 커리어를 해봐야겠단 생각을 계속 하게 만들었습니다.

 

 

“EO 채널과 협업이 가능할까요?”

이시선님의 영상을 보고 4개월 뒤, GMAT 점수와 구글 오퍼를 함께 받아두고 고민하다 구글플레이로 가서 국내 앱/게임 스타트업들의 성장 및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창구 프로그램’의 런칭 및 운영을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창구 프로그램은 구글-중소벤처기업부와의 협력하에 매해 100개의 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평균 1억원의 상금과 구글의 성장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는 형태의 크고 의미있는 프로젝트였는데, 이 프로그램의 장기적인 성과는 자연스레 지원자 퀄리티에 수렴할 수 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첫 3년간은 무조건 프로그램 인지도를 높여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브랜딩 활동을 진행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브랜딩 계획 중에는, 원년 수상 스타트업 대표님들을 모시고 EO 컨텐츠를 만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는 EO 런칭 2년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스타트업-창구 프로그램-구글을 모두 브랜딩하는데 이미 EO만한 채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프로그램 브랜딩 및 수상 스타트업들의 만족도에 EO는 매우 큰 영향을 주며, 구글 마운틴뷰 본사에서 벤치마크 삼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하에 EO의 김태용 대표님, 정윤혜 COO님, 최성운 PD님, 안서현 매니저님등과 연을 맺으며 2년 동안 10여개의 컨텐츠를 함께 만들었고, 그 기간동안 EO는 좋은 투자자들로부터 시드 투자도 받고 다양한 컨텐츠적, 사업적 실험을 하는 등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팀 분들 전체의 성장을 느끼기도하며, 앞으로 이 팀이 어떻게 되려나는 기대감과 궁금증을 계속 갖기도 했네요. 

그렇게 구글에서 3년을 일하고 난 뒤 저는 베이스인베스트먼트로 이직을 하며, ‘다시는 영상 컨텐츠를 만들 일이 없을 것이고 종종 업계에서 김태용 대표님을 오며가며 보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김태용 대표님께 처음 드렸던 & 페어웰 이메일)

 

 

“똑똑똑, 김태용 선생님 계십니까?”

이직하자마자 이번엔 베이스인베스트먼트의 소개 영상을 찍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게 필요한 일인지, 얼마나 험난할 것 같은지 뻔히 그려졌음에도, 신윤호 대표님과 고민 끝에 이 일은 우리가 심사역으로서 일하는데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진행하였습니다. 

(신윤호 대표 & 강준열 대표 w/김태용 대표 @ 촬영장)

 

그런데 예상을 했음에도 훨씬 더 험난한 과정이었고, 재촬영과 수없이 많은 재편집을 거치며 촬영 후 1년이 훌쩍 지나서야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글 작성 시점 기준으로는 어제인데요, 정말 EO 팀에는 이루 더 말할 수 없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전세계의 초기/예비 창업자들이 YC보다 더 먼저 접하는 브랜드”

그런데 첫 촬영을 하던 작년 4월 중순, 김태용 대표님께서 Pre-A 라운드 펀딩을 진행 예정이라고 말씀주셨습니다. 국내에서 유의미한 구독자 수, 다양한 사업/제품들 그리고 상당한 매출이 발생하는 것을 알았음에도 솔직히 그렇게 큰 관심이 없던 상태에서 촬영 후 deck을 공유해달라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deck을 받아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용들이 있더라고요. “글로벌”과 “차세대 YC”와 같은 내용들이었습니다. 

당시엔 EO의 글로벌 채널이 생성조차 안된 상태였지만, 그 자료에는 EO와 같은 non-scripted + tech contents가 글로벌에 구조적으로 없는 이유, 없는데 EO가 잘해낼 수 있는 이유, 글로벌에서 잘하는 것이 가지는 의미와 파급력 등에 대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나서 김태용 대표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글로벌 채널은 또 다시 0 to 1하는 과정일 뿐이고, 미국의, 아프리카의, 동남아의 똑똑하고 잠재력이 큰 예비/초기 창업자들이 가장 먼저 알고 좋아하는 브랜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최소 YC 수준의 영향력이 되지 않을까요?”와 같은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가슴이 뛰는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EO의 Pre-A 라운드를 리드했습니다. 

 

 

“우당탕탕 성장 서사”

‘그렇게 쉽게?’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EO의 Pre-A 펀딩은 혹한기 투자시장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시점에서 시작되어 리드 의향을 보인 여러 투자자가 들락날락했고, 대표님은 저희 쪽에 오셔서 IR/투심을 2번 진행해주셨고, 그 와중에도 글로벌로 컨텐츠를 만들러 뛰어다니면서 새로 만든 채널을 주평균 두 자리수씩 성장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9개월의 검토 과정도 인상적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저희의 투자 의사결정은 지난 5년 이상 그를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봐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에 가깝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저의 성장기로 시작하지만, 저는 결국 현재 테크 업계의 모든 구성원들이 직간접적으로 EO와 함께 성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첫 그룹챗의 스샷에 있듯 “약간 아마추어 같지만, 엄청난 들이댐으로, 선순환을 만들어온” 김태용 대표님과 EO팀이 적절한 트렌드, 담론, 인사이트를 지속적으로 공유해주었고, 테크 업계가 멋지고 합리적이고 힙한 방향으로 가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성장해왔지만, 가장 크게 성장한 것은 김태용 대표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구글에서 첫 촬영할 때 뵌 김태용 대표님은 생각보다 어수룩한 면이 있기도 했는데, 지금의 김태용 대표는 저보다도 훨씬 더 큰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들이 꽤 있습니다. 특히 압도적으로 성장한 것은 그의 꿈의 크기인데, 이 정도로 꿈을 키우고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 오랜기간 동안 몰입하는 분들은 정말 흔치 않습니다. 

당연히 글로벌로 가는 길에는 여러 좌충우돌이 있을 것입니다. 컨텐츠-마켓-핏을 찾는 것도 어려울 것이고, 조직적인 어려움도 있을 것이고요. 흔한 영웅 서사처럼 보스몹잡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면 편하겠지만, 이 길은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고, 그 과정에서의 보스몹은 수도 없이 많이 출현할 것이고, 정해진 엔딩이 없는 형태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야말로 (실제 김태용 대표님을 만나면 자주하시는 말씀처럼) 우당탕탕이죠. 하지만, 이 우당탕탕 속에서 팀은 성장하고 성취할 것입니다.

(위의 영상에 나오기도 하지만) 이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헤쳐나가는 분들을 흔히 ‘사도’라 일컫고, 이 ‘사도’들은 어떻게해서든 큰 일을 이뤄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