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클: 온라인 상의 '나' 자신이 완전히 대체되는 미래
초기 투자를 하며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내가 투자한 창업자가 미친듯이 빠르게 성장할 때입니다. 올해 초, 20대 중반의 또래들로 구성되어 미국의 YC, NfX와 같은 유수의 극초기 펀드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피클(Pickle)은 뭔가 대단한 이력이나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매력적인 AI 서비스를 만들고, 미국 top VC들의 투자를 받았을까요? 그것은 피클의 박채근 대표님과 공동창업자 분들께서 가장 큰 수준의 야망과 매우 빠른 실행을 바탕으로 레슨런을 쌓아나가며, 적어도 제가 최근 본 창업팀들 중에서는 단위기간 내 가장 빠르게 성장해왔기 때문입니다. 정말 압도적인 기울기로요. 팀 엔트리, 첫만남 피클의 법인 설립 전 코드명은 팀 엔트리였고, 이들을 처음 알게된 것은 2024년 3월 22일이었습니다. 한국투자파트너스의 김희진 수석님께서 “아직 법인 설립도 안된 팀을 하나 만났는데, 왠지 너가 좋아할 것 같아”라면서 팀 엔트리 소개 페이지를 공유해주셨는데, 바로 취향저격 당했습니다. 이전에 투자한 팀러너스나 언박서즈 같은 느낌도 많이났고요. 끊임없이 시도한다고 하여 (n * try = entry)로 설명된 팀명은 1,000조 이상 규모로 키워낼 수 있는 글로벌 사업을 지향하고 있었고, 공동창업자들은 15년 클리프의 락업이 걸리는 형태로 주주간 합의가 되어있었습니다. “박채근, 김기현, 유호진, 정상엽, 강예강은 큰 임팩트(DAU 10억명, 1000조 기업)를 만들자는 목적을 갖고 모였습니다. 덕업일치 라이프스타일에 기반한 무한한 런웨이와 모든 도메인에서 빠른 러닝커브를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토대로 AI, Consumer, Social 이라는 두루뭉실한 키워드에서 아래 관점을 유지하며 레슨런을 쌓아왔습니다” (설렘을 안고 바로 공유한 팀 소개 페이지) 그렇게 처음 만난 팀 엔트리의 박채근 대표님은 이제 막 법인을 설립한지 1주일된 상태였습니다. 경희대 의대를 갔지만, 세상을 바꾸는 큰 임팩트에 대한 열망이 더 커서 휴학한 상태였고, 2000년대생 공동창업자들과 같이 서울대입구에서 숙식하면서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처음 만나고 나서는 기대감이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팀 엔트리는 당시 소아과 대란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여서 의사-육아맘을 1:1로 연결하는 서비스를 만들고 계셨는데, 시장 관점에서 크게 잘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없었고, 전반적으로 제품 개발/가설 검증 경험이 적어서 앞으로 꽤나 고생을 하지 않으실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있었습니다. 일단 눈빛이 좀 미쳐있었고, 미쳐있으면서도 선한 느낌이었고, 미팅이 끝나고 팀엔트리-베이스 그룹톡방을 만들어서 저와 이태양 대표님께 자주 묻고 피드백을 구하고 싶다고하셨던 점이었습니다. 이는 전형적으로 부끄러움을 뒤로한 채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한 창업가의 자세였고, 저희 입장에서는 투자 검토 과정에 있어서 시간을 길게 들여서 팀의 일하는 방식을 파악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기에 아주 신이나서 응했습니다. (투명하게 많은 과정과 고민을 나누어주시던 팀 엔트리의 모습) 피봇과 레슨런 그렇게 약 4개월 간 팀 엔트리의 초기 실행 히스토리를 지켜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의사-육아맘 서비스에서 빠르게 피봇하였고, 글로벌 소셜/도파민 카테고리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이어나가셨습니다. 사실 이 영역은 제가 활발하게 검토하고 투자했던 분야인데 아주 스마트하고 잘하는 팀들이어도 예상보다 많은 고생을 하고 있었고, 0 to 1의 제품/지표적 성공이 1 to 10의 사업적 성장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선정했던 아이템들이 너무 단기적으로 유행하거나, 유저층이 좁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찐친끼리의 무전기라든가, 또래들끼리의 플러팅 컨테스트라든가, 그런 것들이었어요. 팀과 톡으로 계속 이야기를 주고 받고, 사무실이자 합숙소를 방문하기도 하면서 계속 지켜보았지만, 뭔가 지속가능한 큰 스케일의 사업이 될 것 같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과정 중에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동창업자 정상엽님께서 한달만에 인스타 팔로워 31만을 모은 것이었고, 그 계정을 이용해서 새로운 서비스를 선택하는 근거로 삼는다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홍보하는 채널로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달만에 30만 팔로워 이상을 모은 계정: @blick.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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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준 이사